아리스토텔레스(B.C.384~322) 이전의 철학도 지식과 진리에 관해서는 많이 다뤄왔으나, 비로소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서야 지식에 관한 본격적인 학문, 즉 논리학이 탄생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언제나 이미 존재와 관련한다. 따라서 그의 논리학은 형이상학과 관계한다. 형이상학은 존재자를 탐구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탐구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형이상학은 동시에 존재론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도 탄생시켰다. 그는 윤리의 문제는 곧 행복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행복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언제나 추구하는 이 행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우리는 바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 목표가 어떤 좋음, 즉 선을 이루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잘 사는 삶’ 혹은 ‘인간다운 삶’은 어떤 다른 것의 수단이 되지 않으며, 오직 그 자체로 자족적이며 궁극적인 목적이자 최고선이다. 이것을 사람들은 ‘행복’이라 부르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마다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다른 것을 이해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고대와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의 문을 연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그가 확실한 앎에 도달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론으로서의 ‘회의(의심)’는 이전의 전통 철학이 외부세계에 대한 ‘경이(놀라움)’에서 시작한 것과는 또 다른 철학함의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확실한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 의심스러운 것은 모두 제거하고 도달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근대 이후의 모든 사고에 인간의 자기의식 안에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의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보여줬다. 그의 노력은 이후 새로운 철학함과 아울러 자율적 인식 주체 및 도덕 주체의 성립에 큰 기여를 했기에 우리는 그를 일컬어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과 세계 안에서 직접 진리를 찾아내고자 했다. 이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진리를 찾는 그의 철학은 스스로 자신의 행위 법칙을 설정하는 인간에게 형이상학적 근거를 제공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의 철학적 근본사상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는 보편타당성을 지닌 명증과학으로서의 수학이야말로 모든 지식의 전형이며, 따라서 확실성을 갖는 수학
오늘날 ‘책임’이라는 말은 거의 유행어에 가깝게 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종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책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책임’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묻게 되면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책임은 무엇이며, 무엇에 대해, 왜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한스 요나스(Hans Jonas, 1903~1993)는 책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철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람이다. 그의 주저 『책임의 원칙: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1979. 한국어판: 서광사, 1994)에서 요나스는 오늘날 책임이 철학적 성찰의 가장 중요한 대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과학기술에서 찾고 있다. 과학기술이 가져다 준 ‘권력’의 크기에 비례해서 권력주체인 인간에게 ‘책임’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연 지배는 - 인간 밖의 자연은 물론이고 인간 안의 자연까지도 포함하여 - 그 규모와 결과에 있어서 너무나 새로운 것이어서 이 시대는 “어쩌면 새로운 윤리학을 요구하는 지도 모른다” 요나스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책임의 원칙’은 이처럼 현대 과학기술이 가지고 있는 가공할 위험성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